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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历任总统题字售价大揭秘

沪江韩语编辑施乐 2015-02-01 09:00
80年代以前韩国总统都喜欢通过题字勉励国民,那到了现在,那些题字值多少钱呢?想知道题字最多,最值钱的韩国总统是哪位吗?同一位总统题字的牌匾,又会有怎样不同的遭遇呢?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전직 대통령 휘호 선호도는 박정희,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 순으로 높다.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2005년부터 10년간 거래가 많았던 전직 대통령 휘호 낙찰총액을 박정희 10억 9200만 원, 이승만 5억 6100만 원, 김대중 3억 2300만 원 순으로 집계했다. 역대 최고가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인용(智仁勇)’으로 2006년 경매에서 1억 5500만원에 낙찰됐다.
在韩国拍卖市场里,对前总统的题字喜好程度前三位分别是朴正熙,李承晚和金大中。韩国美术市价检定协会从2005年起,对这10年间拍卖最多的前总统题字进行了统计,朴正熙的作品以总计10亿9200万韩元排在第一,其次是李承晚的5亿6100万韩元,金大中的3亿2300万韩元。其中前总统李承晚的《智仁勇》在2006年拍出了1亿5500万韩元的最高价。
이 밖에 낙찰 총액이 3200만원이었던 전두환 전대통령 휘호들이 눈길을 끈다. 경매업계 관계자는 '일반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희귀 작품을 소장하려는 추종자들 덕분에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이 쓴 휘호 ‘고진감래(苦盡甘來)’(1975)는 2013년 경매에서 1100만 원에 낙찰됐다.
另外,拍卖价总额为3200万韩元的前总统全斗焕的题字也受到了瞩目。拍卖行业有关人士表明:“虽然对全斗焕题字的受欢迎程度不及那几位总统,但幸好有想收藏珍品的拥趸,也让全斗焕题字的价格上了一个层次。”前总统全斗焕在1975年的写的《苦尽甘来》在2013年拍出了1100万韩元。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신문 방송이나 인터넷, SNS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붓을 휘둘러 쓰는 글씨, ‘휘호’는 대통령의 국정 의지와 방향을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휘호는 국민을 가르치는 교훈내지는 구호 같았고, 소통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선언에 가까웠다.
现在是一个光有意志的话无论有多少,总统的想法都可以和国民一起分享的时代。不过因为报刊电视或者互联网,SNS的发达,向国民传达总统的统治哲学变得比过去更难了。所以通过挥笔写成的题字,这是一个把总统对国情意志和方向即直接又含蓄的表现出来的好方法。这些题字和教化国民的教训口号差不多,与其说是沟通,不如说跟像是宣言。
 
정부 시책에 토 다는 일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대통령의 휘호는 여기저기 넘쳐났다. 근검 절약을 독려하는 신년 휘호는 물론이고 정부기관이나 학교, 지역, 산업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대통령은 친필 휘호를 남겼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들어 방송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줄어들었고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보며 느끼는 감격의 정도도 약해졌다. 개인과 개인, 국민과 국가간의 벽이 그만큼 낮아진 것이다. 21세기 들어 개인의 정보 욕구가 높아지면서 휘호나 담화 같은 일방적 통보보다는 쌍방향 소통 기회를 늘리는 쪽으로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변해왔다. 사회구성원의 성격이 보다 다양해지면서 한 구절의 휘호보다는 친절한 설명과 진심 어린 설득이 필요한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在对政府施政进行评论,我们想都没想过,总统的题字已经四处都是了。不仅是在新年到来之际激励大家勤俭节约,还是到访政府机关,学校,地区或者作业现场的时候,总统都会亲笔题字。不过这些在进入80年代后随着通信技术的发达而渐渐减少了,看着总统的亲笔题字,对总统的感激之情也弱化了。人与人,人民和国家之间隔阂就这样产生了。进入到21世纪,随着个人信息的欲求逐渐变大,比起像题字、谈话之类的单方面报告,和总统的沟通方式变成了双方交流。随着社会构成的多样化,比起一个句字的题字,我们已经进入了一个需要亲切的说明和真心说服的时代。
반세기 이전부터 대통령들이 써 온 휘호를 살펴보면 국책 방향의 변화상은 물론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의 시야도 함께 가늠할 수 있다.
仔细看看从半世纪以前总统们写下的墨宝,不仅可以推测国策方向的变化像,还可以看出顺应时代要求而准备未来的领导人的视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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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휘호를 낱말퀴즈로 만들었다.
把历代总统的题字做成了填字游戏。
6·25전쟁을 계기로 북진통일의 의지를 강하게 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격전지를 직접 방문해 승전을 독려하는 휘호를 남겼다. 1951년 치열했던 강원 양구 펀치볼 전투에서 승리한 해병대 제1연대에 내린 ㉠‘무적해병(無敵海兵)’과 백선엽 대장에게 내린 ㉡‘멸진내외’가 대표적이다.
以6·25战争为契机心怀统一朝鲜半岛意志的前总统李承晚直接访问了战场,留下了激励战胜敌人的题字。其中有代表性的是对在1951年的江原杨口宾治盆战斗中获胜的海兵第一兵团写下了㉠“无敌海兵”四个字和对白善烨大江写下的㉡“灭尽内外”。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또 다시 패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③‘민주구국(民主救國)’을 썼다. 개발과 발전을 향한 독재적 드라이브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표현한 휘호로 ④‘증산흥국(增産興國)’과 함께 민생을 걱정하는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967年第6次总统选举中,连任失败的前总统尹潽善对朴正熙后补写下了③“民主救国”四个大字,旨在“让国民成为主人来救国家”。另外还可以从开发和发展的独裁里仍然朝着民主的愿望的作品④“增产兴国”里读出担忧民生的沉痛心情。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국민교육헌장 첫 문단에 등장하는 ㉢‘민족중흥(民族中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휘호로 즐겨 쓰던 문구이자 평생의 사명이었다. 1965년 고대신문사에 남긴 휘호 ⑨‘조국근대화(祖國近代化)’는 그 후 새마을 운동의 기조가 되었고 ‘민족중흥’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의 통치 이념을 고스란히 담은 휘호로 평가 받고 있다. 같은 해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을 격려하며 쓴 ②‘해양진출(海洋進出)’과 1970년 신년 휘호 ⑥‘개척과 전진’은 경제발전을 위한 진취적 마음가짐을 강조한 경우다. 서울신문 창간기념일에 쓴 ㉥‘사회정화’는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뿌리 뽑는 것이 언론의 주된 역할이라는 그의 언론관을 짐작할 수 있다.
“我们要紧系民族中兴的历史使命,生于这片土地。”出自这国民教育宪章第一段的㉢“民族中兴”,既是前总统朴正熙常写的,也是他一生的使命。1965年在高丽大学新闻社留下题字⑨“祖国近代化”,成为了日后新村运动的基础,和“民族中兴”一起被评为饱含朴正熙坚定的统治理念的题字。同年为了勉励海军士官学校的学生,写下了②“海洋进出”四个大字,而1970年新年作品⑥“开拓与前进”,则强调了他在发展经济上的决心。为首尔新闻创刊纪念日写下的㉥“社会净化”,从这句话可以推测出他认为言论的作用就是把当时社会的不合理连根拔除。
대통령의 이율배반적인 언론관이 휘호에 그대로 남은 경우도 있다. 1980년 언론통폐합을 지휘해 ‘정론직필’하려는 언론을 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1988년 1월 濟州新聞(제주신문) 창간을 축하하며 ⑧‘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휘호를 써서 보냈다.
也有总统留下了二律背反言论观的作品。1980年指挥压缩言论,打算实施“正论直笔”的前总统全斗焕,在退任前夕,为了祝贺1988年1月济州新闻创刊,而寄去了⑧“正论直笔”的题字。
①‘대도무문(大道無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휘호 문구다. “누구나 큰 뜻을 품으면 거칠 것이 없다”는 의미처럼 민주화를 위해 헤쳐 온 고난과 역경을 표현하듯 힘차게 써 내려가는 것을 즐겼다. 역시 오랜 기간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과 더불어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을 민주화 동지들에게 자주 써주었다. 그러나 재임기간에는 휘호를 많이 남기지 않았다.
①“大道无门”是前总统金泳三的代表题字。就像“无论谁如果心怀大志的话就没有东西能够阻挡”的这句话,表达了为了民主化克服过来的一路困难和逆境的意思而写下的豪言壮语。同样是经历过漫长的民主化斗争的前总统金大中,也常常对民主化的同志写下㉦“敬天爱人”,意思不仅是“行动的良心”也是“尊敬上天,热爱民众”的意思。不过在他在任期间没有留下过多的题字。
새해 첫날 한복을 입은 대통령이 한자어 신년휘호를 쓰는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육로방북 때 쓴‘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과 같은 한글 휘호를 남겼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대통령의 소통 방법에도 변화가 생긴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 행사 때 남긴‘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⑤ 강물처럼’이나 ⑦‘사람 사는 세상’을 즐겨 썼다.
新年那天,总统穿着韩服用汉字写下新年题字的习惯,自前总统卢武铉起就没有了。反之,前总统卢武铉在2007年陆路防北的时候也写过类似“巩固和平的路就是通往繁荣的路”的题字。因为随着网络媒体的发展,总统的交流方法也产生了变化。前总统卢武铉在在线笔友会노사모举行活动时也爱写下了“江水不会放弃大海。⑤像江水一样”或者⑦“人活着的世上”。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날 쓴‘국민을 섬기며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데 온몸을 바치겠읍니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명한 휘호‘내 일생(一生) 조국(祖國)과 민족(民族)을 위(爲)하여’를 떠올리게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4대강 사업 세종지구 내 금강과 미호천이 만나는 지점의 ㉤‘합강정(合江亭)’현판 글씨를 직접 쓰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친필 휘호를 자주 쓰지 않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안전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면서 지난해 12월 중앙119구조본부 출범에 맞춰 ㉣‘국민안전의 버팀목’이라는 한글 휘호를 남겼다.
前总统李明博就任式那天写下的“服务国民,献身于打造先进一流国家中”的作品,不禁让人想起他有名的题字“我一生都为了祖国和民族”。前总统李明博在2011年4大江工程中,为世宗地区内的锦江和美湖川交汇处的㉤“合江亭”亲自写了牌匾。现任总统朴槿惠虽然也没多写字,不过在岁月号惨案以后,把国民安全和国情上升为最优先的课题,就着在去年12月中央119救助本部出船,用韩语写下了㉣“国民安全的顶梁柱”的题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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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들의 친필 휘호는 대부분 개인이 소장하거나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문화재 등의 현판으로 제작돼 걸린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문화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전국 56개의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 중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42개에 이른다. 재임기간이 18년으로 긴데다 광화문과 현충사, 불국사 등 문화재 복원사업을 지시한 대통령으로서 복원된 문화재에 직접 글씨를 남긴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만큼 자주 수난을 당하는 것 또한 그의 친필 현판들이다.
前总统的题字大都被个人收藏或机关保管者,但被制作成文化财的的牌匾的情况也不少。根据2005年文化财厅的调查结果,当时全国56个前总统亲笔书写的牌匾中,前总统朴正熙留下的牌匾有42块。因为在他在任18年期间指导过光化门、显宗祠、佛国寺等文化财的修复工程,于是很多修复好的文化财就由他直接写牌匾了。
 
박 전 대통령이 문화재 복원을 추진하며 기치로 내건 ‘민족정기’는 그의 운명과 묘하게 [wk얽히다]얽혀[/wk] 있다. 1979년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내린 박 전 대통령은 그 해 10월 서거했다. 그로부터 22년 후 한국민족청년회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삼일문의 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무단 철거했다.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2005년 3월 1일 한 사회단체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무단으로 떼어내 세 동강을 낸 것이다. 이 현판은 다시 동일 글씨체로 복원됐다.
前总统朴正熙这样一边在推进文化财修复工作,一边高挂“民族正气”的旗帜,和他的命运奇妙地交织了在一起。1979年适逢安重根医生诞辰70周年,朴正熙写下了“民族正气的殿堂”几个字后,同年10月便逝世了。从那时起22年后韩国民族青年会,他们以“为正名族正气”的名义,擅自撤去了首尔钟路塔谷公园朴正熙留下来的“三一门”的牌匾。2005年3月1日一个社会团体也擅自拆了朴正熙亲笔写的牌匾并折成了三段。后来这牌匾用相同的字体给复原了。
2005년 시작된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광화문에 올라간 것은 1968년,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재건한 직후였다. 2005년 문화재청이 현판 교체를 발표한 후 2010년 고종시대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자체 현판으로 교체했지만 3개월 만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아직도 복원 작업 중이다.
另外,2005年开始的光化门牌匾更换的争论仍在持续中。前总统朴正熙亲笔书写的牌匾是在1968年挂上去的,就在用混凝土重建光化门后。到了2005年文化财厅发表了要更换牌匾后,2010年换上了高宗时代训练大将任泰瑛用汉字书写的牌匾。不过三个月过后就牌匾就出现了裂痕,到现在为止也还在修复中。
대통령 현판의 수난은 문화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 서울대 학생들은 민주화대총회 도중 박 전 대통령이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도서관 현판 휘호‘민족의 대학’을 떼어내 소각해 버렸다.
总统牌匾的受难不仅局限在文化财里。在民主化浪潮高涨的1980年,首尔大学生们在民主化大总会途中,把前总统朴正熙送予庆祝建校30周年纪念的图书馆牌匾“民主的大学”给拆下来烧毁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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