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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历史 -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

2010-04-05 00:03
무아위야 1세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정하고 세운 이슬람 왕조(661∼750).

[우마이야 왕조의 성립] 7세기 중엽 아랍 인 지배층의 내분으로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암살당하고 우마이야 집안 출신으로서 시리아 총독이었던 무아위야가 뒤를 이었다. 그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우마이야 왕조(661~750년)를 열어 칼리프의 세습제를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내분에 따라 이슬람교의 종파 대립이 일어났는데, 곧 마호메트의 조카이며 사위였던 알리와 그 자손을 지지하는 시아파와 우마이야 왕조를 받드는 수니파(정통파)로 분리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영토 확장]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는 이슬람 제국의 영토가 더욱 확장되었다.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 유역과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는 한편,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다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에 침입하였다. 프랑크 침입은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카를 마르텔에게 패함으로써 좌절되었지만 지중해를 '이슬람의 바다'로 만들고 유럽 세계를 포위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인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고 이민족을 지배했으므로 이란 인의 강한 반발을 샀다. 더욱이 이란 지방에서는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하려는 시아파의 세력이 커져 갔다.

[시아파와 수니파] 시아파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로 마호메트의 조카인 알리의 자손이 정당한 칼리프의 계승권을 가졌다고 주장하여 수니파와 대립하였다. 수니파는 이슬람교의 정통파로 마호메트의 말과 행동·규약·관습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교리에는 근본적 차이는 없으나 관습·의식 등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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