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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历史 - 송대의 사회와 경제

2010-08-28 07:11
[사회의 변화] 당 말기부터 5대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시대에 이르는 동안 중국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와 경제의 실권을 잡고, 대대로 권세를 부리던…

[사회의 변화] 당 말기부터 5대의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시대에 이르는 동안 중국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와 경제의 실권을 잡고, 대대로 권세를 부리던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과거 시험을 거쳐 관리가 된 지식층이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지식층은 사대부 또는 독서인(讀書人)이라 불렸는데, 대부분이 지방 지주 출신들이었다. 또 이렇게 관리가 나온 집안을 관호 또는 형세호라 하여, 부역을 면제시켜 주는 등의 특권을 주었다. 이들 사대부들은 많은 사유지를 전호라 불리는 소작인에게 경작시키고, 수확물의 절반을 소작료로 받았으므로 경제적 기반도 튼튼해졌다.

[산업의 발달] 송나라 때는 가뭄에 강하고 일찍 수확되는 참파벼 등의 새로운 품종이 도입되어, 벼의 2모작이 가능해짐으로써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특히 남송 시대에는 양쯔 강의 삼각주 지대에 벼농사가 크게 발달하여 강남 지방은 완전히 중국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또 당나라에서 비롯된 차 마시는 풍습이 퍼져 차의 재배가 부쩍 늘고, 또 백자·청자 등의 도자기 생산도 성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산업의 발달은 상업과 도시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행(行 : 상인 조합)·작(作 : 수공업 조합)이라고 불리는 동업 조합이 생겨 서로 간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당시의 화폐로는 동전 이외에 교자·회자라는 지폐도 사용되었다.
 
[전호] 지주에게서 토지를 빌려 경작을 한 후, 거기서 생산된 수확물로 소작료를 지불하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가난한 농민을 말한다. 송대의 전호는 대부분 지주에게 예속되어 있었는데, 토지와 함께 매매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지주에게 과중한 소작료를 납입하고 그들의 잡역에도 대신 종사해야 했다. 이러한 전호는 서양 중세의 농노와 비슷하지만, 토지를 자유로이 반납할 수 있으며, 반납한 후에는 자유로운 신분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달랐다.

[해상 활동] 해상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항저우 · 광저우 등에는 이슬람 상인의 내왕이 잦았으며,중국의 상선도 직접 인도양을 거쳐 페르시아 만까지 왕복하였다.또한 송나라는 고려와도 무역을 하였는데,이 때 송나라 상인을 따라서 이슬람 상인도 고려에 찾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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