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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历史 - 통일 신라 말의 왕위 쟁탈전

2010-05-23 02:53
왕위 다툼의 시작/내물왕계의 왕위 계승/무열왕계의 반발/중앙 귀족의 대립과 지방 세력의 성장

[왕위 다툼의 시작]

1. 진골 귀족들의 다툼
(1) 통일 후 번영을 계속하던 신라는 8세기 후반에 진골 귀족들 사이에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왕권의 전제화에 대한 진골 귀족의 반발로 시작되었다.
(2) 경덕왕은 이를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 정책을 폈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혜공왕 때에 이르러 난으로 번지고 말았다.

2. 대공의 난 발생
혜공왕 때 일어난 대공의 난은 신라 하대에 계속된 정치적 혼란의 시초였다. 전국의 96각간이 중앙 집권적 정치에 반발해 서로 싸운 이 난으로 왕권은 크게 약화되었다.

[내물왕계의 왕위 계승]

대공의 난 이후 다시 김지정의 난이 일어나 혜공왕은 죽고, 김양상이 즉위해 선덕왕이 되었다. 선덕왕 때부터 무열왕계의 자손들은 왕위에서 물러나고, 내물왕계의 자손들이 왕위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를 보통 신라 하대라 부른다.

[무열왕계의 반발]

헌덕왕 때 일어난 김헌창의 난은 내물왕계의 왕위 독점에 대한 무열왕계의 반발이었다. 김헌창의 아버지는 무열왕의 후손으로 선덕왕 이후 당연히 왕이 될 인물이었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원성왕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김헌창은 이에 불만을 품고 웅천주(공주)에서 난을 일으켜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하였으나 곧 진압되었다. 그 후 그의 아들 범문도 한산에서 난을 일으켰지만 역시 실패하였다.

[중앙 귀족의 대립과 지방 세력의 성장]

왕권의 전제화를 막기 위해 힘을 합했던 귀족들 사이에도 다시 대립과 반목이 생겼다. 이때부터 왕위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실력과 무력의 강약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하대 150여 년 동안에만 20명의 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란으로 희생되었다. 이러한 중앙 귀족들의 다툼은 중앙 정부의 권위를 떨어뜨려 지방 세력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더 알아보기>
 
[신라의 시대 구분]

신라의 시대 구분은 흔히 상대, 중대, 하대의 세 시기로 구분한다.

1. 상대
상대는 박혁거세부터 진덕 여왕까지로 성골이 왕위를 계승하던 시기이다.

2. 중대
중대는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로 신라 문화의 전성기를 이룬 시기이다.

3. 하대
하대는 선덕왕 이후의 시기로, 중대 이후에는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하대의 왕위는 무열왕계가 아닌 내물왕계가 독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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