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군의 활약과 진주 대첩]
임진왜란 초 한때 패전을 거듭하며 흩어졌던 관군은 서서히 의병 부대와 연락을 취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그리하여 남해안을 따라 전라도로 들어가려는 왜군과 진주성에서 맞붙게 되었다. 진주 목사 김시민은 곽재우가 이끄는 의병의 도움으로 군민을 지휘해 1592년 10월 5일부터 10일에 걸쳐 싸운 끝에 왜군 2만 명을 물리쳤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 대첩의 전과를 올렸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명나라도 군사를 보내 조선을 도왔다. 제1차로 5,000여 군사가 평양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후 제2차로 5만여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군과 합세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이어 쫓겨 가는 왜군을 계속 추격해 개성을 되찾았으나, 경기도 고양의 벽제관 싸움에서 패하는 바람에 명군은 평양으로 돌아가고 왜군은 서울에 집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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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 싸움]
임진왜란 당시 벽제관에서 벌어진 명나라 군과 일본 군과의 싸움으로, 벽제관은 오늘날 경기도 고양시 지역에 위치했다. 평안도 방면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평양에서 명나라 군에게 크게 패하고 서울로 후퇴하였다. 승리한 명나라 군대는 여세를 몰아 계속 남으로 쳐내려 오다가 반격을 시도하는 왜군에게 밀려 벽제관까지 후퇴하였다. 여기서 큰 싸움이 벌어져 결국 명나라 군은 왜군에게 크게 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