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盘点韩国10名大器晚成的明星

柚子不西 2018-06-07 06:30

是金子不论到什么时候都会发光,就算经历了数十年的考验,总会等到发光的那一天。明星们也不是所有的人都是一夕之间就变成大明星的,大器晚成的明星也有很多。

“인고의 시간을 보낸 ‘대기만성형’ 스타 베스트10
”度过隐忍期的‘大器晚成型’明星 best10”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떻게 기회가 찾아와 ‘빵’ 터질지 모르는 연예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인고의 시간을 견딘 후에야 시나브로 대중의 눈에 띄는 스타들도 있다. 긴 시간 동안 공들여 갈고 닦은 탓일까. 그들이 지닌 빛은 더 오래, 더 찬란하게 빛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럼 지금부터, 큰 그릇을 채우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던 대기만성형 스타들을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다. 
有一句这样的话“突然有一天,睡醒之后就变成明星了”。不知道什么时候机会来了就爆发了,这在演艺界很常见。但是反过来,也有爱很长时间内都没有被发掘,长期隐忍之后渐渐被大众发现的明星。是经过长时间的磨炼的原因吗。他们所拥有的光芒是更持久的,感觉会散发更灿烂的光芒。那么现在开始,去看看那些为了成为更大的明星比起别人花了更多时间的大器晚成型的明星吧。

“이시영”
“李诗英”

이시영이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그녀는 배우가 되고자 끊임없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이어 나갔지만 기회는 이시영을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특유의 끈기로 개명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작은 역부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 나간 끝에 결국KBS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의 ‘민지’역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그 이후로도 이시영은 <부자의 탄생>의 철부지 악녀 부태희 역을 익살맞게 소화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았기 때문일까. 이름을 알린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그 흔한 ‘연기력 논란’에 단 한 번도 휩싸인 적이 없다.   
李诗英是20代初半的时候有想做演员的梦想的。她为了能够成为演员不停地去敲企划社的门,虽然和有关人员见面了,但机会却没有轻易找到李诗英。但她还是没有挫折。以其特有的毅力,连改名都不说,从小角色开始慢慢地积累,最终出演了KBS迷你剧系列《花样男子》的“敏之”一角,进入大众的视线。当时她已经28了。那之后,李诗英诙谐的驾驭了《富翁的诞生》中不懂事的恶女角色傅泰熙而开始乘胜长驱。是因为长时间的磨炼吗。虽然有知名度已经很久了,但她一次都没有被卷入经常发生的“演技争议”中。

“정해인”
“丁海寅”

2013년 AOA의 뮤직비디오 '모야'로 데뷔할 당시, 정해인은 신인치고는 적지 않은 스물여섯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데뷔해 꾸준히 필모를 쌓은 뒤 서른 줄에 접어 들어서야 입대를 하는 보통의 남자 배우들과는 달리, 일찌감치 군대에 다녀와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것. 하지만 ‘군필’은 오히려 정해인만의 장점이 되었고, 군대 걱정을 던 덕분에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나갈 수 있었다. TV조선의 '백년의 신부'로 첫 드라마 연기를 경험한 정해인은 '삼총사', '블러드', '응답하라 1988', '그래, 그런거야', '도깨비', '당신이 잠든 사이에'까지 다양한 작품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단계씩 입지를 다진 결과, 드디어JTBC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첫 주연을 맡으면서 그야말로 ‘만개’할 수 있게 되었다.
2013年出演AOA“MOYA”的MV出道时是新人都算不上的26岁时期。20代初半出道之后一直不断积累演技,进入30代之后服兵役的一般男演员不同的是,丁海寅早早地就去了军队,之后才开始演员生活。但是服完兵役反而成为了丁海寅独有的优点,因为不用担心军队问题,可以一步一步地积累经验。通过TV朝鲜的《百年的新娘》第一次尝试演技的丁海寅先后在《三剑客》、《Bloded》、《请回答1988》、《是的,是那样的啊》、《鬼怪》、《当你沉睡时》等很多作品中出演了很多小角色。然后就这样一步一步的立足之后,终于在JTBC的电视剧《经常请吃饭的漂亮姐姐》中担任主演才算得上是“盛开”。

“유재석”
“刘在石”

유재석은 1991년, KBS 1회 ‘대학개그제’ 입상을 계기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어린 유재석은 자신이 금방 스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무명생활은 무려 7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남희석, 김국진, 김용만 등 데뷔 동기들이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는 일마다 어긋나기만 했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실력과 노력 부족으로 돌리고 단 한 번의 기회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유재석. 결국 그의 겸손함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은 그를 국민 MC라는 꽃길로 인도했고, 유재석의 전성기는 십수 년째 끝나지 않고 있는 중이다. 
刘在石1991年,以KBS 第一届《大学喜剧节》为契机,华丽地在演艺圈出道。当时,年轻的刘在石认为自己很快就会成为明星。但是和期待的不同,足足过了7年多的无名生活。所以在那段时间他不得不关注南希硕、金国镇、金勇万等同期们火的样子。虽然做的每件事都会有错乱,但却把所有的一切都当成补充自己的实力和努力的不足,只等待那一次机会的刘在石。最终他的谦逊和不断的自我开发将他引向成国民MC的花路上,刘在石的全盛期在连续数十年仍没结束。

“황치열”
“黄致列

2007년 가요계에 데뷔한 황치열은 꾸준히 음악을 해왔다. 듣는 사람이 적을지라도 계속해서 새 앨범을 발표했고,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등, 생계 활동도 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거다. 그렇게 꾸준히 한 우물을 파던 황지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15년경. 그는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그 결과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기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16년, 그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단박에 한류스타로 각광받게 된 것. 덕분에 ‘나 혼자 산다’ 출연 당시에만 해도 옥탑방에 살았던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산 아파트에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
2007年在歌谣界出道的黄致列不断地做着音乐。即使是听的人少,也继续发表新专辑,并作为主唱教练活动等,并没有放弃生计活动。那才是“热情”的生活着。那么坚持一件事的黄致列,2015年终于等到了一生仅此一次的机会。他通过Mnet《看见你的声音》留下了令人印象深刻的一面。最终出演了KBS2《不朽的名曲》。机会将尾巴挂在尾巴上,在MBC的综艺节目《我独自生活》中固定出演,让人知道了这个名字。于是2016年,他的命运完全改变了。在中国版《我是歌手》中,一下子作为韩流明星而受到瞩目。托节目的福,他在出演《我独自生活》的时候,只能住屋塔房的他,不过几年间,就堂堂正正地搬入了首尔房价最高的公寓。

“류준열”
“柳俊烈”

류준열은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처음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 남들에 비하면 분명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 종영 이후 바로 MBC의 미니시리즈 ‘운빨로맨스’의 주연을 꿰찼다. 그 이후 ‘더 킹’,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명실상부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상황. 유명해지기 전부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다져 놓았던 물 샐 틈 없이 완벽한 연기력이 그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柳俊烈通过tvN的电视剧《请回答1988》第一次出名。他当时已经30岁了。和别人比起来明显是很晚才出发。但是《请回答1988》结束后,马上就在MBC的迷你剧《好运罗曼史》中获得了主演。之后他相继出演了《The King》、《出租车司机》、《小森林》成为了名副其实的忠武路最棒的蓝筹股。在变得有名前就开始就一直在出演独立电影,完美的演技就是他成功的原因。

“조진웅”
“赵震雄”

‘스타’라기보다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조진웅. 그 역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스타에 해당한다. 기나긴 무명시절을 보낸 조진웅은 KBS2의 주말연속극 <사랑을 믿어요>에 순박한 재미교포로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의 눈에 들었다. 이후 SBS의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 무사 무휼로 등장하면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인정받았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 이후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이후 일본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큰 인기를 불러 모았던 tvN의 드라마 ‘시그널’의 주연을 맡으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대열에 들어섰고, 그의 소탈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는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与其说是“明星”,“演员”的修饰语很适合的赵震雄。他也属于典型的大器晚成型明星。曾度过漫长的无名时期,赵震雄在KBS2的周末剧《相信爱情》中以淳朴的在美侨胞,第一次进入了大众的眼中。在接下来的SBS电视剧《树大根深》中以侍卫无恤登场,获得了特有的魅力,电影《与犯罪的战争》之后,完美地成为了“信任的演员”。之后作为获得了被日本翻拍的很高人气的tvN电视剧《信号》的主演成为了大韩民国最有名的演员.在他洒脱的同时,沉稳的演技正在持续受到大众的喜爱。

“변희봉”
“边熙峰”

배우 변희봉의 출발점은 사실 연기자가 아닌 성우였다. 연기자로 전업한 이후, 변희봉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개성 강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열정 하나로 연기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한때는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해야 했던 변희봉을 구제했던 건 다름 아닌 영화감독 봉준호. 봉준호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봉준호의 페르소나’로 떠오른 변희봉은 70대의 늦은 나이에 영화 <옥자>로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演员边熙峰的出发点其实不是演员而是配音演员。当演员转业之后,边熙峰虽然在众多电视剧中展现了强烈的个性,但是没有登上了明星的行列。但是他没有挫折,只凭着热情,人生走到了演技路上。没有别人,就是电影导演奉俊浩救济了曾经有一段时间连生活下去都很难的边熙峰。以奉俊浩出道作品的《绑架门口狗》开始,接连出演了《杀人的回忆》、《怪物》之后,成为了奉俊浩的Farlyon的卞熙峰,在70多岁的年纪,因电影《玉子》踏上戛纳国际电影节的红毯。

“워너원 윤지성”
“WANNA ONE尹智圣”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연습생으로 출연한 끝에 보이그룹 워너원의 리더로 데뷔한 윤지성 역시 대기만성형 스타의 전형이다. 아이돌로서는 ‘조상 격’ 나이에 해당하는 스물일곱에 데뷔한 그는 유난히도 긴 연습생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코앞에서 데뷔가 좌절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대학원 진학, 심리 치료 공부 등의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두면서 끊임없이 꿈을 좇았다고 한다. 특유의 소탈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지성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웠던 시절, '정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자신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며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produce101第二季中以练习生出演,后来作为男团Wanna One的队长出道的尹智圣也是大器晚成型明星的典型。作为偶像组合的“前辈”的年龄段的27岁才出道的他,一定要让他走出漫长的练习生生活才行。虽然有很多近在眼前的出道挫折的情况,但是他没有放弃,反而去考了研究生,学习心理治疗等现实性的方案,并不断追求梦想。以特有的洒脱角色而备受喜爱的尹智圣在与某媒体的采访中提到困难的时候,“真的很恳切地希望能实现”这一想法是让自己坚持的原动力。还说“真的很喜欢乙醇效应那句话。

“김윤석”
“金伦奭”

아침드라마나 영화의 단역 등으로 소소히 배우 생활을 이어오던 김윤석. 김윤석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연기는 참 잘하는데 이상하게 잘 안 풀린다’라고. 하지만 하늘은 역시 원석인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아귀로 단숨에 충무로의 신 스틸러로 떠올랐던 것. 그의 강력한 존재감은 이내 <추격자>의 타락한 형사 역으로 이어졌고, 결국 <추격자>를 통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타내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의 날고 기는 커리어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큰 역 작은 역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을 쫓아온 그의 뚝심이 좀 늦었지만 더욱 눈부신 성공의 반석이 되었던 셈이다. 
以晨剧或电影的配角,一直保持着演员生活的金伦奭。以知道金伦奭的人的口被熟知。演技真的很好,但是很奇怪的发展不太好。但是老天果然不会就让他那样待在原地。2006年《老千》中以老鬼的角色一瞬间成为了忠武路的新演员。他强烈的存在感成为了《追击者》的堕落的刑警角色,通过《追击者》在几个电影节上获得最佳男主角奖。之后的经历没有必要再进行更多的说明。不分大角,只追着演技的他,虽然有点迟了,但还是成为了成功的磐石。

“송해”
“宋海”

전국노래자랑의 영원한 오빠, 개그맨 송해야말로 대기만성형 스타의 끝판왕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한 방송에 출연한 송해가 스스로를 ‘대기만성형’이라고 칭했기 때문.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두고 “50대까지 허송세월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배삼룡, 서영춘과 같은 걸출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 본 채로 무려수십 년의 무명생활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황혼을 바라보는 50대가 되어서야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야전무대를 해보자”는 신출내기 PD의 제안으로 <전국노래자랑>을 만났던 것. 그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국민 MC로 거듭날 수 있었다. 
全国歌谣大赛永远的哥哥,搞笑艺人宋海是大器晚成型明星的终结者。在一个节目中出演的宋海被称为“大器晚成”。他放下自己的经验表示:“到50多岁为止一直都是虚度光阴。”在裴三龙、徐英春等杰出的前辈的阴影下,足足有几十年的无名生活。而且,直到不知不觉间到了5 0多岁的时候才能找到一生的机会。新出的新人导演提议“做夜战舞台吧”,遇到了《全国歌唱大赛》。此后,他可以成为一位数十年来获得国民喜爱的国民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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